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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투어 7$
08:00~14:00

 

 

 호치민으로 여행을 오시면 가장 기본적으로 투어하시는 곳 중에 한 곳인 구찌 터널.

이곳을 둘러보지 않고서는 베트남 사람들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이 남긴 상처...  그런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구찌 터널은 호치민의 근교투어로는 가장 시내와 가까운 관광지다.

이곳은 베트남 전쟁사에 있어 그 어느지역보다 공헌도가 큰, 그래서 이 지역 출신 인사가 전쟁후

 국가주석으로 2명이나 선출될 정도로 그 수고(?)를 누구라도 인정하고 있다. 전쟁사를 논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구찌는 미국과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구찌로 인하여 미국은 전쟁광이 되어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고 

그 여파로 인하여 베트남 남북전쟁에서 발을 빼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구찌 터널...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찌 땅굴이라고 해야 한다. 

프랑스가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월남을 묶어서 인도차이나를 세워 

월남의 남부 광활한 평야지대인 사이공에 총독부를 설치, 베트남을 통치하기에 이르렀을 때 

독립항쟁을 위하여 사이공 주변의 농민을 중심으로 투쟁이 일어났다. 이때의 무기들인 농기구와 

죽창등등을 (보관하고)숨기기 위하여 땅굴을 파기 시작함으로 구찌 땅굴의 역사가 시작된다.

미군의 군사고문적인 지원을 힘입어 프랑스를 물리쳐 독립을 이뤘으나 미군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내정 간섭을 하면서 길죽한 베트남은 남북으로 나눠진다. 호치민씨가 이끄는 월남공산당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북쪽은 민족통일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제를 내걸고 

미군과의 전쟁이 발발하고... 프랑스를 상대하던 농민군은 미군을 상대로 

다시 무기를 지하 땅굴에서 끄집어 내야 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일명 베트콩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구찌의 민중들... 

적이 있어 아군이 분명하게 죽어가고 있지만 적은 어디에서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분명히 존재하는 적... 귀신하고 싸움을 하는 듯한... 이런 전쟁에서 미군은 이성을 잃게 되고 

결국 구찌는 미군의 화염방사기, 불도저, 소이엠탄, B25라는 초대형 폭탄에 이어 

고엽제까지 등장시켜야만 했다.

 

한 때, 구찌 땅굴엔 무려 20,000여명에 이르는 정규군과 의병들이 웅크리고 있었고... 

이들은 사이공 강줄기를 타고 혹은 밤을 이용하여 사이공 인근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습격하고,

벌건 대낮에 농사를 짓던 농부와 아낙네마져 수색중인 미군은 괴롭히고... 날카로워질대로 날카로워진

미군병사는 인간으로선 감히 상상해서도 안될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르고... 오는 악이 있었으나 가는 악도 있었고...

이것은 서로간에 순환적으로 대응하여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전쟁 당시 울창했던 숲이 잿더미로 변하고 촌락을 비롯한 부락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낮에는 인적드문 그러나 밤이면 사람이 득실대는 전쟁의 한복판이 되고 말았다.

화염방사기에 이어 고엽제가 살포되었던 구찌. 전쟁이 끝나자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곳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삶의 터전을 갈고 또 갈아서... 

지금은 수많은 고무나무를 재배하는 지역으로 거듭나게 된다.

 

잊어선 안될 기억들은 자꾸만 되새김질 하여야 한다. 

그런 의도에서 정부에선 이곳에 구찌 땅굴 기념관을 세우고 자국민의 

사상 교육장으로 쓰던 곳이 지금은 베트남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구찌를 돌아보는 일반적인 방법으론 호치민 여행자 거리 이른바 베트남의 이태원이라는 

데탐과 브이비엔거리를 포진하고 있는 여행사들이 연합으로 고객을 모객하여 출발시키는 구찌터널 

투어가 있다. 저렴하다. 입장료 90,000동과 중식이 불포함이지만 그래도 가격은 단돈 6불에 불과하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몹쓸 그런 투어가 아니다. 괜찮다. 한국인은 비롯한 왠만한 외국 

관광객이 즐겨 이용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구찌투어는 리멤버투어에서 만든  상품이 아니다.
리멤버는 티켓을 파는 에이젼시에 불과하다. 간혹 가이드가 불친절하니,차가 작았다느니,

에어컨이 약하다느니 리멤버투어에 오셔서 심하게 컴플레인을 하는 여행자들이 있다.
제발 저희에게 그러지 마시길 당부한다. 현재 베트남의 투어 시스템이 그정도 뿐인걸 어떻하란 말인가...
리멤버투어도 나름 열심히 투어를 주관하는 회사에 컴플레인을 걸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참고로 투어팔아 1$버는 회사에 투어가 않좋았다고 전액 환불하라는 손님은
제발 리멤버에서 티켓구매를 하지 마시길 당부한다.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여행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투어시작은 리멤버투어로 손님이오시면
투어 주관 여행사에서 픽업을 해 드린다.

 

 

 호치민시를 빠져나가 구찌로 들어서 터널쪽으로 향하다 보면 이렇게, 고엽제가 안고 있는 

독성을 말끔하게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고무밭을 지나가게 된다.

 

 

 매표소에서 직접 110,000 티켓을 사야한다.

 

 입장권 가격

 

 

 입장권

 

 

 전쟁의 흔적을 찾아, 땅굴의 형성과정과 그 쓰임새 그리고 땅굴이 갖고 있는 의미를 찾아 들어가는

관문이다. 어떤 이는 이 관문이 지하도인 탓에 "어~ 땅굴... 괜찮은데? 좋은데~"라고 하신다.

분명히 말하건데... 이 지하도는 땅굴로 가는 통로일 뿐이다.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면 안내를 받기 위한 지하 벙커가 여러 곳에 있다. 이 중에 한 곳을

찾아 들어가 비디오 시청을 비롯한 구찌터널의 이모저모에 대한 안내(교육)를 받는다.

미리 알아두셔야 할것이 있다. 이런 벙커를 비롯해서 작전회의실이나 병원 그리고 식당등등이 

속 속 손님앞에 나타날터인데... 전쟁 당시엔 이런 지붕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땅속에 존재했던 

것이다. 관광객을 위하여 천정이었던 머리위의 흙을 다 퍼내고 대신 나무잎으로 된 지붕을 

얹은 것이다. 구찌 터널이 이처럼 땅위로 드러난 곳이라면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벙커로 내려가는 입구

 

 함정이다. 발을 헛딛거나... 해서 이런 구덩이로 빠지게 되면 영락없이 고슴도치 꼴이 되고 만다. 

구덩이 밑에 박혀있는 꼬챙이는 쇠가 아니다. 대나무를 깍아 박아놓은 것인데... 꼬챙이에 

썩은 쇠똥을 발라놓은 탓에 찔린 상처가 심하게 덧나 결국은 썩어가는 부위를 

도려내든가 잘라내야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된다. 

 

 일명 베트콩들이 땅속으로 숨어들고 혹은 기어 나오곤 했던 땅굴 입구. 

너무 좁아서 날씬한 사람조차도 들고나기가 쉽지않다. 군장을 맨 미군...? 절대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겠다 싶다.

 

 현재도 존재하는 땅속으로 연결된 땅굴 입구. 자연에 의해 엄폐되었던 곳인데, 마치 여우굴같은 

곳이었는데 하두 사람들이 들락거리다 보니 이렇게 아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되고 말았다. 

거참 이상한 일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으면 뭐든지진 변하고 만다. 사람의 손에 뭐가 있나?

제발이지... 좋은 편으로 변하여야 할터인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숨구멍이다. 사람은 공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반면에 공기만 존재한다면 그래서 숨을 

쉴 수가 있다면 사람은 어디서든 삶을 이어갈 수가 있다. 그곳이 하늘이거나 바다속이라도 말이다. 

구찌터널도 마찬가지다. 공기가 있어야, 땅속이라도 공기의 오고감이 있어야 삶이 이어진다.

개미구멍을 이용한 공기통로. 이른바 숨구멍이다. 개미가 드나들던 조그마한 구멍이 

발 하나쯤은 넉넉히 들어갈 큰 구멍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자꾸만 건드린 탓이다.

 

 전쟁의 와중에 잠깐의 휴식을 하고 있는 병사들. 물을 나눠마시는 우정, 동료애를 강조하고 있다.

 

 젊은 여자. 전쟁의 와중속에서도 헝크러진 머리를 단장하고 있는 모습이... 여자는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음이 보여지고 있다.

 

 음악은 모든 인간들이 사랑하는 것 중에 하나다. 음악은 심란했던 마음을 다듬고 서러운 마음을 

다독거린다. 음악으로 인하여 천재성이 번득이고 음악으로 때문에 맺혔던 미움이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끄러운 것이 싫어진다. 시끄러울 정도의 음악은 젊은이들에게 가깝다. 

아마도 이 젊은이는 당시의 유행하던 음악을 청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이렇게 전쟁의 하루하루를 일일이 기록하던 사람이 있어

구찌의 여러가지가 오늘날까지 후대들에게 전해지게 되었을게다.

 

 미군이 쓰다가 버리고 간 탱크

 

 다양한 트랩이다. 발목을 잡는 것부터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도 있다. 변변한 무기가 없던 베트남 

의병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선택했던 자연을 이용한 원시적인 전쟁도구. 이른바 트랩이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생금새 자체가 끔직스럽고 살벌하다.

 

 군수물자가 넉넉했던 미군측에 비해 베트남 병사들은 현저하게 물자가 부족했다. 때문에 적군이 

사용하다가 버리고 간 물건들은 이들에게 아주 좋은 물자공급이 되었고 또한 소중한 자원이었다. 

철판을 녹여내고 잘라서 적군의 침입을 알리는 괭과리로, 혹은 위의 사진과 같은 폭탄 그리고

트랩의 여러 창살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랬다. 미군은 자신들이 썼던 무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물자가  재활용되어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감에 치를 떨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월남쌈을 세계적인 먹거리로 유명하게 만든 반짱(Banh Trang). 이른바 페이퍼 라이스다. 

베트남을 찾는 분들은 먹거리로 우선 퍼(Pho. 쌀로 만든 국수) 그리고 월남쌈을 희망한다. 

구찌 군민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재현하면서... 이렇게 만든 반짱을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솥에 물을 부처 김이 나오게 한 뒤에 쌀을 곱게 빠서 물과 혼합을 한 것을 솥위에 밀가루부침처럼 

넓게 편 뒤에 뚜껑을 닫는다. 10여초 뒤에 뚜껑을 열면 김에 익은 젖은 반짱이 나온다. 

그것을 위의 사진처럼 햇볕에 내다가 말리면 제품 완성이다.

 

 

 증유로 만들어내는 소주. 알콜도수가 무려 50도를 넘나드는 고량주과다. 재료는 두말할것없이 

쌀이다. 쌀이 많이 생산되다 보니 국수도 밥도 술도 쌀로 만든다. 한국으로선 부러운 노릇이다.

손님 중에 술과 친하신 분든 무료로 제공되는 술잔을 덥석잡아 마신다. 뜨거운 날씨, 후덥한 공기... 

곧바로 얼굴까지 치고 올라오는 취기... 함부로 손을 댈 술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거친 쌀을 곱게 만들었던 기계. 우리나라의 맷돌과 같다. 한국인이야 낯익은 기계라서

그냥 덤덤하게 넘어가지만 외국인에겐 신기한 것이라서 한번씩 멧돌을 돌려보기도 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전쟁을 피부적으로 느끼라고 설치해논 사격장. 군인도 아닌 것들이 군인 비스름한 복장을 하고 

손님이 주는 팁으로 먹고 사는 처지면서 손님을 쏘아보는 눈초리가 매서운... 마치 사격훈련에 

접어들게 되면 사열대에서 군기를 잡는 조교들 같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에게 잘 보여야 

내돈주고 쏴야하는 사격이지만 편할 수가 있으니... 그것 참...

 

 총과 실탄이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더욱이 모든 것이 우중중한 쇠떵이로 되어져 있다. 

총쏘기의 묘미를 아시거나 사격에 자신이 있는 분은 이렇게 붙박이된 상태에서의 

사격 자세를 싫어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견고하게 용접이 되어져 있다. 

왜냐면 몇 번인가의 총기사고가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쏘고자 하는 분은 잘도 쏜다. 가격이 비싸다. 2발에 3불쯤가던 것이 요즘엔 그보다 웃돌고 

있다. 더욱이 한 두발은 아예 취급도 안하고 있다. 10발씩 묶어서 팔고 있다. 이 장사도 꽤 

괜찮은 잇속이다 싶다. 어차피 구형 총기와 탄알... 이렇게 외화벌이를 하면서 

손님도 끌고 있으니... 이래저래 돈이 굴러 들어간다 구찌 땅굴로.

 

 땅굴파기의 초기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군복을 만드는 곳

 그 유명한 베트콩 복장이다. 지금은 기념으로 팔고 있지만... 한때는 이 복장만 봐도 간이 

내려 앉곤 했던 이들이 있었다. 첫째, 미군을 비롯한 베트콩을 상대로 전쟁을 하던 사람들. 

둘째로는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은 탓에 이들의 색출과 추격을 받던 남베트남 사람들... 

그네들은 이 복장만 봐도 간담이 서늘했다고 한다. 

 

 일명 호치민 샌들을 만들고 파는 장소. 군용 타이어를 이용하여 견고하고 저렴한 샌들을 만들어 

신고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호치민 주석으로 인해 유명해진 신발. 샌들을 만들던 이 아저씨

"금호타이어 굿~"한다. 전쟁 때 금호타이어가 있었겠는가 만은... 요즘 호치민에 금호 타이어 공장이 들어선 이후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타이어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필경 그 여파라 싶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구찌터널의 백미, 땅굴로 들어가기. 이것을 체험하지 않고는 구찌 터널을 다녀왔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곳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캄캄하고 좁고 고불랑거리고... 

허지만 너무 염려하실 일도 아니다. 유럽 관광객을 위하여 입구를 비롯한 터널 자체를 넓힌 탓에...

20M 코스나 30M 코스쯤은 들어갔다 나오실만하다. 어떤 이는 아주 쉽게 100M를 소화하시니...

 

사진에 찍힌대로 B52라는 폭탄이 떨어졌던 곳이다. 사진으로는 식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실제로 보게되면... 끔직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3번을 넘어 4번을 향해가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도 웅덩이의 깊이와 넓이... 

장난이 아니다. 대형 폭탄이 떨어졌던 흔적이 한 두곳이 아니다. 여러 곳이다.

 

 

그래... 맞다. 세월이 약이고... 시간이 가다보면 잊혀질 것은 잊혀지고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변할 것은 변한다. 그 끔직스런 폭탄으로 인해 만들어진 웅덩이를 보듬은 자연은 그곳에

나무가 자라나게 섭리함으로 지금은 이렇게 굵직한 대나무군이 자리하고 있다. 

 

 

 

 

 흘린 땀과 땅속을 더듬고 다닌 탓에 더렵혀진 손과 얼굴을 딱으시라고 흘러내리는 자연이 주는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음식이다. 이것은 일종의 마(고구마. 감자의 또 다른 종류)를 삶아놓은 

것인데... 맛있다. 옆에 있는 것은 땅콩가루와 소금을 섞은 양념이다. 이 음식은 오늘의 

구찌 터널이라는 전설을 낳은 구찌 지하유격대와 의용군들의 식사였다. 이것 외에도 

주먹밥이 있는데... 사진을 찍던 날은... 다 떨어졌는지 주지 않았다.

 

 

식당 앞에 전시되고 있는 다정한 부부상. 토끼같은 새끼를 낳고 밤이면 새끼를 꼬고 낮이면 

밭을 갈아 희망의 내일을 열어가야 할 젊은 부부. 그러나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앞날과 수백년간 

이어온 민족통일이라는 온 국민의 숙제앞에선 자신들만의 삶을 고집할 수가 없어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부부를 의미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부의 뒷편에 있는 식당... 지하에 있는 것이다. 식당이 다른 곳보다 깊다.

그 이유는 지하 2층에 있던 탓이다. 지금이야 지붕을 해놨지만... 땅속이었다.

 

 돌아봐야 할 곳을 돌아보고 나오면 화장실이 있고 그 앞엔 이렇게 그 당시에 이곳에 투하되었던

무시무시한 폭탄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져 있다.

 

구찌는 습한 모래밭이었다. 그곳엔 흑전갈과 코브라가 서식하고 있었는데...

관광객에게 팔고자 만들어 진열해논 뱀술과 전갈주.

 

 

이제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 되어버린 고무나무로 만든 목공예품 

 

 폭탄이 떨어졌던 넓직한 자리. 앞서가던 이의 발자락도 보이지 않던 습하고 어두운 땅굴. 찌그러진 

탱크의 잔해. 지금도 먼발치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총 소리. 하늘을 덮은 수풀과 그 숲으로 인해

전해지는 후끈한 열기...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착잡하다. 그런 순간에 화사하게 피어난 꽃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다. 베트남은 어딜 가든 이런 모양의 분재들이 있어서 좋다. 솜씨가 좋다. 

 

 들어갈 때 이용했던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밖으로 나오시면 구찌터널관광은 그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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